스트라빈스키의 천지가 진동하는 봄을 느끼며
작성자 오천룡 조회수 2991 건
홈페이지 http://ohchunryong.com 작성일 2012.03.26. 13: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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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3-26

S형,

바야흐로 봄이 왔습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맞는 봄도 아닌데 이 봄이 나에게 왜 이토록 강렬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봄에서 받는 느낌을 그림에 옮겨 보자니 무언가 모자라기만 합니다. 재능이 모자랄 뿐더러 이 봄의 대기 속에 충만한 움직임을 어떻게 잡아서 형상화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아 볼 수 없습니다. 도대체 봄의 크기를 가늠해 볼 수가 없군요.

형상으로는 도저히 안되겠고 , 내가 시인이라면 봄의 형체를 암시해서 시라도 지을 수 있을 텐데… 이상화가 그의 시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 에서 봄이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암시하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금방 알 수 있지 않습니까 ?

지금 이곳에서는 매년 봄 마다 열리는 ≪ 詩人들의 봄 ≫이라는 행사가 다섯번째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목소리 좋은 연극인들에 의해서 프랑스 신참 시인들의 신작시를 낭독하는 모임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지하철 열차칸에서도 승객들을 향하여 시를 낭송 하고 있군요.

詩가 없는 언어는 죽은 言語라고 함을 들은적이 있읍니다.

그런데 나, 화가는 그저 있는 그대로만의 봄의 기운을 느끼며 대기의 활기찬 변화를 하루종일 멍하니 바라보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는 것이지요. 이 봄을 화폭에 담아내지 못하니 답답합니다.

이곳 이국 땅에서 맞는 봄이 벌써 서른번 째가 훨씬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올해는 이 봄을 처음 맞는 봄처럼 느껴집니다. 그것은 진정한 나의 봄의 나이를 놓친 채 벌써 황혼의 나이를 달리고 있기 때문일까요 ?

이 아까운 봄을 좀 더 만끽해야 하겠기에 봄을 주제로 한 음악을 찾아 듣고 있습니다. 비발디의 봄은 바이올린으로 그린 한 폭의 풍경화 이며, 베토벤의 봄은 피아노와 바이올린과의 대화로 비롯된 봄이며 슈만의 것은 심미적 ‘봄의 교향악’ 이었습니다.

그러고 스트라빈스키의 발레음악 ≪ 봄의 祭典 (Le Sacre du printemps) ≫을 들어보며 몇 해 전에 니진스키의 안무를 재현한 발레공연을 회상해 봅니다. 역사에 길이 남는 그 봄의 제전 발레의 초연은 1913년 새 봄을 경축하기 위한 프로그람으로 당시 신축한지 얼마 안되는 샹제리제 극장에서 전설적인 발레리나 니진스키의 안무로 공연되였읍니다.

20세기에 들어서서1905년은 반 고호가 죽은지 15년만에 그의 작품이 인정되기 시작한 해이며 마티스가 야수파그림을 발표한 해였고, 1906년은 세잔느가 사망했으며, 다음해 1907년엔 피카소가 ≪ 아비뇽의 처녀들 ≫로 입체파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런저런 그 무렵 약관 28살의 스트라빈스키는 레만 호수가를 빙빙돌며 힘차게 요동치는 봄의 소리를 들으며 빌레곡 ≪ 봄의 祭典 ≫을 착상하고 있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국땅의 고독한 자신을 찬란한 봄으로 변신시켜 놓고 작곡했다고 보아야 하도록 자기의 감정을 봄기운 속에 맹렬하게 분출해 놓았읍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형태는 바로 이러할 것이라고 확신한듯한 야성적이면서도 야심만만한 강력한 표현으로 최초의 현대 발레음악을 탄생시킨 것 입니다.

관람객들에게 물감통을 내 던졌다고 비난 받은 마티스의 야수파들 처럼 스트라빈스키의 야수적인 음악은 소생하는 생명의 활기로 가득찬 대지가 한꺼번에 일어나 춤추며 요동치는 그런 봄을 묘사해 내 놓고 싶었던 것 입니다.

발레곡 봄의 제전은 삼라만상이 봄을 맞으려고 끈질기게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다가 일시에 소생되며 세상천지를 요란하게 진동 시킵니다. 대지의 모든 생명체가 야단법석을 치며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함성을 지릅니다. 만물들이 각자 여기저기서 동시에 자기들 봄날의 축제를 열면서 깊은 겨울 잠에서 깨어나고있는 찬란한 생명의 활기를 절실하게 느끼도록 합니다.

나는 봄의 제전을 연주로만 듣다가 몇해전 니진스키의 안무를 재현한 발레로 보고 연주곡에서 느꼈던 것 보다 훨씬 더 요란하고 맹렬한 대지의 봄의 율동에 놀라서 흥분돼 너무나 큰 감명을 받았었습니다. 니진스키의 안무는 봄을 맞아 땅에서 소생해 일어나는 생명들의 소동은 보통 소동이 아니고 온통 천지를 진동시키는 대소동으로 춘 미친 춤 이었습니다.

니진스키의 봄을 경험한 후 부터는 봄이 오면 그냥 왔다 매번 그냥 가거버리는 싱거운 봄이 아닌게 되버렸습니다. 그래서 니진스키의 미쳤거나 신들린 춤과 같이 천지가 격렬하게 진동하는 봄으로 느낄 줄 아는 행복을 내몸에 지니게 됐습니다..

파리 오페라는 역사적인 오페라 공연과 발레 공연의 무대장치와 의상 등을 그 당시 원본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니진스키의 발레도 안무, 의상, 무대장치를 원작 그대로 고스란히 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세기의 발레리나가 된 니진스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몇년마다 한번씩 오페라 발레단 현역 에뚜알(스타)들이 그의 안무를 재현하는 공연을 열어 초연때의 의상과 무대장치를 모두 꺼내어 니진스키의 옛무대를 그대로 재현해 공연해 내고 있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 페트루슈카(Petrouchka) ≫와 ≪ 르 싸크르 뒤프렝땅(Le Sacre du printemps) ≫ 에서 신들려 미친듯이 춤추던 니진스키는 결국은 30살도 채 못되어 자기 자신이 스스로 완전히 미쳐 버렸습니다. 그후 30년 동안이나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면서 남기는 일기장에서 모든 사람이 나를 미친사람이라고 한다고 적었으면서도 그러나 나는 그 세상사람들을 정말로 사랑하노라라고 수없이 반복해 적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역사에 남게될 유명한 발레공연이였다 할지라도 만일 지금의 누군가가 1913년 봄으로 돌아가, ‘봄의 제전’ 니진스키 발레를 공연하는 샹젤리제 극장에 있었더라도 불협화음이라고 여겨여만하는 방약무도한 음악과 니진스키의 야성적인 광란의 춤에 놀라서 그 자리에 있었던 관객들과 똑같이 휘파람 야유와 아우성으로 모자와 프로그램을 무대에 내동댕이 치며 객석의자를 떼어내고 부수는 똑같은 난동을 함께 부려서 극장안을 완전히 주체할 수 없는 아수라장이 되도록 엉망을 만들어 놓았을 것 입니다.

러시아 이교도들이 농신에게 드리는 이 제전의 모습은 봄의 전조를 알리는 서정적인 짧은 음률에 이어 심신이 완전히 지칠대로 지칠때까지 광란스러운 춤을 추다가 기진해서 쓸어지는 소녀의 춤으로 비롯되서 제물로 선정된 소녀가 죽도록 신들려 춤추는 춤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그 초연은 관중들의 난동으로 공연이 중단되고 니진스키는 무대 뒤로 피신해 숨었어야 했습니다.

막이 오르면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선률에 이어 곧 바로, 갑자스럽게 난데 없이 변화된 템포와 폭발적이고 난폭한 괴상한 음이 튀어 나오고, 위협적임이 지나쳐 공포감마저 느끼게 하는 어마어마한 타악기의 굉음에 예기치 않은 이상한 음색으로 혼합된 곡조와 함께 추는 니진스키의 그 방약무인한 안무는 관객을 아연실색케하여서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만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혼란이 극치에 오르자 무대에 나온 극장장이 ≪ 끝까지 들어봐 주세요 ≫ 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관객에게 호소해 보았지만 흥분한 관중의 소동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박자와 음률을 극단적으로 혁신해 놓은 이 음악은 현장에 있던 쟝 꼭또가 말한대로 ≪ 모든 현대예술을 요약해서 집결시켜놓은 듯 ≫ 무시무시한 힘으로 니진스키의 정렬적인 안무와 함께 극장안에 분출되고 있었던 것 입니다.

천재 예술가들의 작품을 동시대인들이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 입니다. 이해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동시대 그런 천재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찾아내서 그의 작품을 만나고 싶은 그런 기회를 얻기란 더욱 힘들고 거의 불가능 합니다.

만약에 모차르트와 같이 살던 시간에 같은 도시 잘즈부르크에 요행히 같이 살고 있었다치더라도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어 볼 수 없었을지 모르며, 반 고호가 두달동안 마지막으로 살았던 오베르쉬롸즈 주민이었었다 한들 그의 미친작품을 어떻게 이해했겠습니까 ?

이렇게 생각하니 오늘의 아름다운 이봄을 그리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 볼뿐이 면서도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이유는 다행히 모차르트나 반 고호와 같은 수많은 천재들과 동시대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엉뚱히 해보았읍니다.

지금 나는 모차르트시대에서 200년 이상 떨어져 있고 반 고호 로부터도 100여년이상 떨어진 후지만 천만 다행으로 옛날과 같이 귀족이나 부자가 아니더라도 원하기만 하면 모차르트를 들을 수 있고 수집가가 아니더라도 반 고호를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문명의 진전과 과학발전의 혜택으로 내가 원한다면 조금만의 노력으로도 언제나 최상의 예술을 자유자재로 누리며 즐길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인들의 지금의 철학 ≪ 이씨에멩뜨낭 ( Ici et maintenant : 당장에 지금 ) ≫ 이라는, 옛날에 우리네 부모들에게 대들며 말하던 ‘지금당장 이자리에서’ 모든 것을 움켜쥐어야 한다고 했던, 새롭고 위험한 철학에 젖어있는 현대인들 일지라도 마음만 먹으면 고전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조건아래에서 우리는 그 지금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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